우리의 대화/아빠에게

가면맨

peppermintssi 2024. 8. 31. 08:49

일주일 미뤄둔 생일 축하를 했어. 즐겁게 저녁을 먹고, 오랜만의 외식이라 흥도 올랐겠다 어디 사람들 많은 곳에서 우리도 즐길까 하는 생각에 금요일 밤을 불태우러 갔지. 2년 만에 본 밴드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우리도 흥겹게 놀겠다 싶어 자리를 잡았어. 같이 노래도 부르고 웃고 떠들고 있는데 후레시맨 같은 옷을 입고 망토를 두른 가면맨이 나타났어. 은색 운동화에 멋진 시계를 차고 있었어. 파란 쫄쫄이라 무슨 히어로 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배트맨
복장을 하고 동네를 누비던 사람이 기억나서 또 괜히 반갑기도 했어. 예전처럼 북적거리지 않는 곳이 되어서 가면히어로가 그래도 있어 라면서 처음에는 약간의 향수를 느꼈지만 또 대수롭지 않게 그 사람이 뭘 하든 취객이겠거니 무시하고 다시 우리끼리 즐기기로 했지.
근데 가면히어로가 우리가 노는 가게로 호객을 하는 거야. 어설픈 춤을 추고 마임을 섞어가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오세요 하는 몸짓을 휘적거렸어. 전문가가 아닌게 아주 티가 났지. 가게 매니저도 문 앞에 있었는데 그런 가면맨을 가만히 두더라고. 꼭 그 가게에서 가면맨을 고용한 것 처럼 한참을 그렇게 호객을 했어. 날씨도 덥고 분명히 땀에 젖어 숨쉬기도 힘들 텐데 대단하고 짠하고 계속 눈길이 갔어. 가면맨이 신기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지. 다른 손님들이 가게 매니저에게 낄낄대며 뭔가 물었는데, 에이 당연히 내가 고용한게 아니라며 그들 모두 웃어댔어. 뒤에서 수근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자기를 놀려대도 가면맨은 이걸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아니면 못알아먹은건지. 신경쓰지 않는 건지 모르지만 더워서 가면을 벗고 쉬다가도 또 계속하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있다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곳으로 또  걸어가더라.
박수도 없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고 누가 있었든지 없든지 아무 변화도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린 한 시간이 땀에 절은 가면을 벗고 또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가면맨의 모습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거야. 저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시간을 즐기고 간 거였을까,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무슨 히어로인지도 모르는 싸구려 복장을 입고 금요일 밤 번화가에서 군중을 헤집고 다니는 이유가 뭘까. 이 더운 곳에서 혼자 외롭게 가면을 쓰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이목을 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왜 나는 슬플까. 잘 하지도 못하는 마임으로, 본인에게 돌아오는 금전적인 이득도 없는 가게 홍보를 취객들에게 비웃음을 받아가면서 배짱 좋게 즐기고 쿨하게 떠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운 걸까, 마음 아픈 걸까.
마음이 참 복잡하고, 저 구석이 좀 슬프고 했어. 왜 이상한데 꽂혀서 나는 계속 그 사람 생각을 하는 걸까. 그 사람 본 걸 잊어버리지 않게 편지로 보내. 누군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는걸, 물론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딘가에 그 사람의 한 시간이 기록되었다는 걸 남겨놓고 싶었어.
그러면 가면맨의 시간이 뭔가 의미가 있었던거라고. 그럼 좀 덜 슬프지 않나 라는 마음이야.

2024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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