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노트

욕!

peppermintssi 2024. 9. 3. 20:12

내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두번째로 좋아하게 된 장면은 키팅 선생이 자작시 숙제를 안 해왔다는 토드를 사람들 앞에 세우고 월트 휘트먼의 시 구절을 마음을 다해 소리쳐보라던 장면이었어. (첫번째는 당연히 오 캡틴 마이 캡틴이지.) 영어로는 “I sound my barbaric Yawp over the rooftops of the world”. 나는 세상의 지붕너머로 내 야성을 내지른다. 그게 野性인지 野聲인지 그걸 노리고 번역한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그걸 영어로 맛있게 대사하는 로빈 윌리엄스의 표정에 정말 잘 어울려서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됐어. 야호!가 아니고 이야!도 아니고 해병대의 악!에 가까운 야생의 여업!을 멋지게 번역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토드가 자꾸 조여오는 키팅 선생의 요구에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러. 여업! 속에 쌓아둔 짜증과 화를 키팅 선생을 향해 질러버려. 왜 자꾸 아니라고만 해요! 왜 좋게 말하면 틀렸다고 해요! 토드가 화!를 냈어. 그 때 키팅선생이 당황하거나 맞붙어 화를 내거나, 거기서 토드를 멈췄으면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시작할 토드는 없어져버렸겠지. 화를 시작으로 토드는 즉흥시를 멋들어지게 읇어내고, 친구들의 존중과 갈채를 받아.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토드의 머리를 맞대고 키팅선생이 말해 “너 이건 절대로 잊지마. Don’t you forget this”

Validated. 내 존재와 의견이 타당하다는 걸 확인받은 순간이 필요해. 내 스스로 타당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내가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때, 내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의견을 피력했을 때, 타인으로 부터 오는 확인. 적합하고 합당하다라는 확인. 내 말이 정당하다는 확인. 내가 존재해도 괜찮다는 안도.

화도 대화라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확인받지 못하면 더 공허해지고, 더 화가 나. 그렇다고 내가 받아주면 우울해지고, 환멸이 느껴지지, 전혀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해. 더 억울하기만 하고 같은 걸로 또 화를 내고 있을 뿐이야.

야성을 내지르고 싶어. 내지른 내 화가 합당하다는 축복을 받고 싶어. 내가 그래서 그렇게 페북에 욕!!!!!!!!!!!!!!!!!!!!! 이라고 써댔나봐.

2024년 9월 3일.

'언니의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끼 사자  (0) 2024.08.16
돈의 가치  (0) 2024.08.16
고사리랑 아기 손  (0) 2024.08.15